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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신경 안 써요"... 일본인은 어떻게 '득도'했나

관리자 | 조회 1170 | 2015.09.04 18:43

[10만인리포트-공포의 후쿠시마, 그후 4년⑧] 이이다테촌에 가다

글쓴이는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위원장 겸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입니다.

3월 11일은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 일어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상처의 현장을 고발하고,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원전 연장-폐쇄 문제를 되짚어보면서 대안을 제시한다. 이 기획은 환경운동연합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으로 진행한다. [편집자말]

▲ 방사능오염을 제거한다는 제염사업은 집 앞 마당이나 지붕, 눈에 보이는 농경지 일부의 토양을 걷어내 검은색 비닐 포대에 담아 동네 곳곳에 쌓아두는 게 전부였다. ⓒ 김혜정
▲ 방사능오염을 제거한다는 제염사업은 집 앞 마당이나 지붕, 눈에 보이는 농경지 일부의 토양을 걷어내 검은색 비닐 포대에 담아 동네 곳곳에 쌓아두는 게 전부였다. ⓒ 김혜정

 3월 12일 오후 무렵 이이다테촌(飯館村)에 도착했다. 사고원전에서 짧게는 30km, 멀게는 50km 떨어져 있지만 고농도의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어 거주제한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 지역은 원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풍향의 영향으로 고농도 방사능에 오염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피난구역을 '사고원전으로부터 반경 20km 이내'로 설정하는 바람에 한 달 이상 방치된 지역이기도 하다.

버스가 해발 약 600미터 지점에 오르자 차량 엔진이 휴식을 취한다. 이이다테촌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일행을 마중 나온 주민 대표 오미야씨가 말했다.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피신시킨 황당한 일본 정부

"이이다테촌은 산림이 전체 면적의 75%를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연평균 기온이 10℃일 정도여서 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습니다. 300만 도쿄 인구가 살 수 있을 만큼 넓은 230㎢의 지역에 6200여 명이 살았던 정말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집도 잃고 이웃도 잃고 정든 고향 땅, 모든 걸 잃어버리고 4년째 난민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사고 당시 정부는 피난 지시도 엉터리로 내렸습니다. 원전 바로 옆 마을인 후타바정(雙葉町) 주민 1200여 명이 원전사고가 발생한 후 이 곳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하지만 원전 1호기 폭발 이후 2~4호기까지 연달아 폭발한 2011년 3월 14일~15일, 이이다테촌에 많은 눈과 비가 내렸는데, 방사능 수치를 검사해보니 시간당 30~100마이크로시버트(μSv/h)가 측정됐습니다. 심지어 3월 21일, 주민들이 마시는 음용수에선 요오드 131이 965Bq/kg 검출됐습니다. 정부의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아이들과 함께 물과 공기를 마시면서 살았는데, 원통합니다."

일본 정부의 지시대로 방사능 오염을 피해 떠나온 이이다테촌이 실제는 고동노 방사능 오염 지역이었다는 설명이다. 일본 정부는 사고 발생 한 달 후인 2011년 4월 12일, 이이다테촌을 피난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때야 비로소 방사능에 무방비 상태로 살던 주민들은 뒤늦게 피난길에 올랐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한 지 무려 3개월이 지난 6월말에야 모든 주민들이 이이다테촌을 떠났다. 이는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가 자부하던 원전사고 대비책과 대응책이 무용지물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전사고 4년 즈음해 찾은 이이다테촌은 제염작업이 한창이었다. 방사능 오염을 제거한다는 제염사업은 말이 제염이지 집 앞 마당이나 지붕, 눈에 보이는 농경지 일부의 토양 3~5cm를 걷어내 검은색 비닐 포대에 담아 동네 곳곳에 쌓아두는 게 전부였다.

이이다테촌은 산림이 전체 면적의 75%를 차지한다. 전체를 모두 제염작업 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대다수의 주거지는 산 밑에 위치해 있었다. 집 앞에나 농경지 위 토양을 걷어낸다 한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방사능에 오염된 산에서 방사능 물질이 씻겨 내려와 재오염됐다. 생태계 사슬을 통한 방사능 농축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지난 2013년 도쿄대학 기무라 교수가 원전에서 30~40km 떨어진 지역의 삼나무 잎의 세슘을 측정한 결과 지상에서 4m 높이의 잎에서 1만 200베크렐(Bq/kg)의 세슘이 측정됐다. 14m 높이의 잎에서는 2만 2000베크렐(Bq/kg) 검출됐다. 토양과 지하수에 축적된 방사능이 생태계 사슬을 통해 광범위하게 농축되고 있는 상황을 드러낸 조사였다. 당시 조사결과가 공영방송 NHK에 방영되면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방사능 계측기에서 쉴 새 없이 경고음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제염작업이 이루어진 지점에 가지고 간 방사능 계측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쉴 새 없이 경고음이 울려댔다. 수치는 17마이크로시버트(μSv/h). 이런 상황이라면, 제염을 중단하고 체르노빌처럼 사람 출입을 금지하는 폐쇄 지역으로 결정하는 게 마땅한 조치다.

▲ 17마이크로시버트(μSv/h). 체르노빌처럼 사람 출입을 금지하는 폐쇄지역으로 결정하는 게 마땅한 조치다. ⓒ 김혜정
▲ 17마이크로시버트(μSv/h). 체르노빌처럼 사람 출입을 금지하는 폐쇄지역으로 결정하는 게 마땅한 조치다. ⓒ 김혜정

 현장에선 만난 주민은 "원전은 고작 40년 가동하고 중단되었지만 주민들의 삶은 100년이 지나도 결코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과 자연, 이웃과의 연대, 일자리 등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들이 없다"고 호소했다.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를 뜻하는 일본어로 득도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은 돈벌이는 물론 출세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의 '3포 세대(결혼, 연애, 출산)'과 비슷한 표현이다.

'사토리'란 단어를 끄집어 낸 이유는 원전사고 피해 지역을 돌며 만난 주민들과 제염작업자들 때문이다. 그들은 신기할 정도로 방사능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작업자들은 제대로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제염작업을 했고, 주민들은 고농도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있었다. 한데 한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방사능 쓰레기를 손으로 만지는 사람들

"우리 집은 사고 원전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사고 후 고농도 오염 지역으로 변해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동안 피난 생활을 하며, 느낀 것은 연간 피폭 허용치(1mSV)를 훨씬 뛰어넘는 상황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지킬 수도 없는 방사능 피폭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됐습니다."

짧은 그의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그도 처음엔 이런 상황에 분노를 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일본 정부의 무시와 침묵뿐이었단다. 거기다 힘겨운 피난 생활까지 더해지니 분노는 곧 절망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방사능 오염은 무신경할 정도로 득도하게 됐다는 거다. 심각한 것은 현재 일본에는 이렇게 '방사능 사토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거다.

 

 

▲ 이이다테촌에 위치한 귀환곤란구역 출입하는 차량. 차량에 타 있던 주민은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 김혜정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이이다테촌에 위치한 귀환곤란구역을 찾을 때다. 이 지역의 연간 방사선량은 50mSV를 넘는다. 한 마디로 사람이 출입해서는 안 되는 초고농도 오염 지역이란 거다. 그때, 출입 금지 바리케이드 안쪽 귀환곤란구역에서 차량 한대가 빠져 나왔다. 차량에 타 있던 주민은 평상복 차림이었다.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현지 주민은 "지역 주민들이 매일 순번을 정해 마을 순찰을 돈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귀환곤란구역을 오가는 주민들이 많다"면서 "나도 한 달에 몇 차례 바리케이드를 넘어 (귀환 곤란 지역의)집에 가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온다"고 말했다.

해당 관청의 허락만 받으면, 언제든지 고농도 방사능 오염 지역의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가재 도구의 외부 반출도 가능하다는 거다.

제염작업자들도 방사능에 무뎌지긴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고농도 오염 지역에서 제염작업을 하면서 마스크와 헬멧 정도만 착용했을 뿐, 방사능 쓰레기를 손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이다테촌에만 이런 제염작업자가 7000여 명에 정도고 전체 규모로는 약 2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사고 현장 방문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착잡했다. 후쿠시마 사고 발생 4년이 지났지만 일본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는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부흥 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지나간 일로 치부하고 '부흥에 힘쓰자'는 슬로건만 곳곳에 나부꼈다.

지역 주민을 희생하고 건설업계와 원전산업만 살리려는 일본 정부의 '기민 정책', 그것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4년을 맞은 일본의 실태였다.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고 끝없는 피난 생활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은 그저 주민들의 절규에 그치고 있었다.

일본에 이어 세계 5위의 원전국가인 한국, 원전 밀집도만 놓고 보면, 세계1위인 우리나라, 후쿠시마의 공포가 한국에서 재현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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